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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교정을 위해 어디까지 권력이 개입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해답은 개입하지 않는 상황과 개입된 상황. 둘 중 어느쪽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가에 달린 일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의 넓은 시야와 선택에 대한 자유가 아닐까? 

분류없음 2011/06/24 04:31



사회적으로 비윤리적이라고 느끼는 나의 정의에 대한 결벽은
보통 그 가해자의 불공정함에서 비롯된다. 

기본중의 기본이다. 타인이 행했다면, 혹은 타인이 자신에게 행했다면 비판할 행동을 자신이라는 이유로 허용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물론 자신에게 그 룰을 적용시킨다고 해서 타인에게 멋대로 굴어도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역지사지의 정신은 인간에게 바라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으로 느껴진다. 

타인의 아픔에 대한 공감과 이해, 또는 어떤 연대감를 느끼고 공동체를 배려함으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규율을 깨지 않겠다는 신뢰감 말이다. 음, 어쩌면 자신의 이익을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룰보다 우선시하는 사람을 보면 느끼는 불쾌함과 불합리함은 내가 살고 있는, 이해하는 세계를 그가 부정한다고 느끼는 데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만일 나를 죽이려 드는 강도가 있다면, 나는 그가 살고있는 세계의 룰을 옮겨받아 강도를 공격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예상 할 수 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약자를 제외시키는 시장원리의 사회를 지지한다면 나의 도덕적 기준도 그에 살아남기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 할 수 없다. 때문에 나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의 룰을 고집하고 그 룰이 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통용되어 굳어지길 바란다. 즉 나와 도덕적 견해 차이가 있는 타인에 대한 혐오는 사회적 자아실현을 방해하는 요소에 대한 분노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정적으로는, 첫째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둘째로 발전적 가능성을 내포하는 합리적 사회를 만드는데 어째서 동조하지 않는가에 대한 이해불가에서 오는 답답함이 크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종류의 절박함이 그들의 세계를 그토록 비합리적이고 소모적이며 스스로에게도 위험한 이기적인 논리로 가득차게 만드는 것일까? 어째서 그들은 모두가 그 룰을 따른다면 분명 파탄나고 말 그런 세계를 지지하는 것일까?

어쩌면 '나 혼자 생산적인 룰을 지킨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거야. 나를 배신하고 약탈 할 거야. 그러기 전에 내 몫을 챙겨야 해!' 라는 식의 인간에 대한 불신과 방어심리가 그 도덕성 결여의 시작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배신당한적 없는 인간은 사회의 구성으로서 본분에 어디까지나 충실할 것인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완벽한- 혹은 배신에 대한 가능성이 제외된 사회에서 공익에 대한 룰은 절대적으로 지켜질까? 확신 할 수 없다.

게다가 그렇게 개인을 통제하는 사회는 그 자체로 발전적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개인의 권리와 사회적 발전 중 어떤 것을 중요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명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겠다. 정부가 개인을 올바른 길로 자라도록 규제하는 것은 옳은가?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제한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사회적 발전을 중요시 한다면 때로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룰 안에는 경쟁심리와 욕망에 따른 범죄의 가능성도 내포되어 있는걸까. 그 행위 자체의 도덕성 결여 이전에 그런 행위들이 야기하는 변화와 인류의 발전 가능성에 더 가치를 두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면 사회의 발전보다 개인의 권리 수호를 중요시 여기고 싶어지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인류가 희생당하는 소수 없이는 발전하지 못하는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천적이 없어도 도태되지 않을 방법을 찾는 쪽이 생산적이지 않은가.  


분류없음 2011/06/03 05:17

행복은 타인과의 비교보다는 나르시즘과 더 긴밀한 관계가 있지 않을까?

전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나보다 못한 사람의 증가와 안정감의 비례하지 않음, 또는 그룹 내 자신의 적합한 위치에 대한 개인차가 이런 방식으로 설명이 된다면 여러가지 문제들(혹은 나보다 뛰어난 개체의 증가)은 나르시즘의 발현에 장애물적인 요소로서 작용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개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 것도,
스스로 멋지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역시 자아도취가 행복의 본질일까.

예전 포스팅에서 썼던 것 처럼
자아도취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생인가?

스스로에 대한 반성으로 견고해지는 자아는 점점 눈이 높아지고
그 높아진 눈을 맞추기 위해 환경개선에 힘쓰는 무한의 굴레가 인생인가?
눈을 높이지 않은 채 자아도취 할 수 있다면 그대로 순박하고 행복한 삶이 되는걸까? 정체된 자아와 환경 속에서도 개인이 행복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일까?

물론 인생에서 찾아오는 많은 문제들은 견고한 자아와 훌륭한 환경을 가진다고 해서 완벽히 피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자아와 환경을 가지고 있을수록 개인이 스스로에게 도취될 수 있을 확률이 줄어들 것 같다. 자아라는 접시를 반성으로 작게 만들수록 얹을 수 있는 파이도 작아지게 마련이니까.

어쨌든 주어진 현실을 자신의 접시에 맞춰 개발하며 그런 자신에게 도취되어 살아가는 삶이 인간이 말하는 행복한 삶인걸까?

흠.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포괄적이라 자아도취만으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자아도취는 인생의 목적을 설명하는 데에 더 적합하게 느껴진다.

분류없음 2011/04/21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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